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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침입 검색 결과

  1. 미리보기 2015.12.16

    [한국사] 고려의 대외 관계 (거란의 침입과 여진과의 관계)

2015. 12. 16. 22:12 - 꿈별이

[한국사] 고려의 대외 관계 (거란의 침입과 여진과의 관계)

고려의 대외 관계


거란의 침입과 격퇴



거란 침입의 배경: 고려의 북진 정책, 친송 정책


1차 침입 (993)


고려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북진정책과 친송적책을 실시하며

거란과의 외교를 단절하자 이에 대한 불만을 품은 거란이 

장수 소손녕을 보내 고려에 침입한 사건


결과: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이 쳐들어오자 서희가 나서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6주를 확보




강동6주) 고려시대에 서북면 지역에 설치했던 행정구역으로

흥화진, 용주, 칠주, 귀주, 통주, 관주 지역이다



2차 침입 (1010)


고려 장수인 강조가 천추태후를 몰아내고 현종을 왕으로 세운 강조의 정변에 대한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거란의 황제 성종이 직접 쳐들어온 사건


경과: 고려의 장수 강조가 군을 이끌고 나섰으나 대패하여 개경이 함락되어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으며

양규 장군과 군사, 백성들의 활약으로 큰 타격을 입은 거란군이 물러남


결과: 고려의 강조 장군 사망 + 거란은 고려와 화친을 맺고 물러남



3차 침입 (1018)


거란의 2차 침입때 약조한 현종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모두 지키지 않자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한 사건


결과: 감간찬이 도망가는 거란군을 귀주에서 거의 전멸시킴 (귀주대첩)

거란 송 고려의 세력 균형과 함께 나성(개성) 및 천리장성 축조

-> 국방 강화, 현종때 초조대장경을 조판하여 선종 때 완성





고려와 여진과의 관계


여진족은 만주에서 일어난 민족으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말이나 모피 등을 바쳐

식량, 옷감, 농기구 등으로 바꾸어 가던 평화로운 관계였으나

12세기 초 세력이 커지자 고려와의 충돌이 잦아져

1104년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별무반을 편성하고

1107년 여진을 정벌하며 9성을 쌓았다.


하지만 여진족의 끊임없는 동북9성 반환 요청에

1109년 동북 9성에서 군사들을 물려 여진에게 반환하며 이 사건은 끝남